수용이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 - 2008년 11월 18일
아니 그럼 몇시야? 머리맡에 신용등급이 조금 낮은 시계가 하나 더 있긴 했지만 이놈은 한술 더 떠서 지금이 12시라는데 물론 나는 그정도 떡밥에 경박하게 부산을 떨지는 않는다. 마침 휴대폰도 어제 동방에 두고오는 바람에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mp3을 켜야만 했고 곧 느긋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바쁘게 설쳐봐야 이미 네트워크 수업 들어가기는 글렀으니 간만에 집에서 점심이나 요리해먹고 푸근한 마음으로 생활원예 들어가야지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김치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치볶음밥은 버섯이 들어가야 맛인데 냉장고에 새송이 버섯이 물러져서 그냥 다 버리고 청피망, 양파, 마늘만 넣어서 볶았다. 볶아먹기에는 김치가 덜 익어서 소금을 조금 뿌렸다.
음 뭐...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는거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힘들게 요리한 김치 볶음밥을 괴롭게 먹어치우고는, 어제 형섭이가 간지난다고 호평한 '군대간 내동생 풀셋'을 갖춰입고 집을 나섰다.
생활원예 시간에는 해바라기 한송이를 cellophane-紙(지)로 적절하게 감싸서 Scotch tape를 붙여 마무리하는 고난이도 실습을 했는데 나는 여기서도 역시 두각을 드러내는 편이어서 매우 아름답게 포장된 해바라기 꽃을 손에 들고 가장 우아한 포즈로 향기를 맡고는 감탄한 눈빛으로 엘레강스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흡족해할 수 있었다. 옆의 옆자리 이영인 여학우가 나를 한 번 곁눈질 해줄 때까지 이상의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실습용 해바라기에 코박고 썩은 눈빛으로 한참이나 야린 셈이니 눈치챘다면 많이 놀랐을거 같다. 앞으로는 자중해야지.
한주의 최대 고비라고 할 수 있는 소공 시간에는 하필이면 우리조 조장님이 안나오셔서 오늘의 발표는 바로 다음으로 나이 많은 내가 하게 됐는데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뼛속깊이 느끼게 해준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건 뭐 과목자체가 얼기설기 사기치는 느낌이라 우리말로 해도 쉽지않을 내용이었는데 영어로 하자니 한마디 하고 바로 다음 대사에서 당연하다는듯이 대뇌에 마비가 왔다. 시끌벅적하던 강의실에 갑자기 우리 조원들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정도의 정적이 찾아왔고......몇 분간 어버 어버버 하고있는 나를 바로 앞에 앉아서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시는 교수님의 표정은 '너는 병신이다. 하지만 다 이해한다' 하고 말씀하시는 듯한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기에 나 역시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점점 시무룩해지는 얼굴 근육으로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야 했다. 보다못한 교수님이 적절한 타이밍에, 넌 좀 더 준비하고 다른사람 먼저 하자 하고 말씀하셔서 우리 조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그냥 한글로 하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왔고 나는 고마와하며 거기에 따랐다. 오늘의 굴욕은 잊지않는다.
수업이 끝나고 교내 DVD방에서 혜린이의 세미나가 있었다. 불은 꺼져있고 발표하는 혜린이도 등을 돌리고 있어서 아늑한게 잠자기 딱 좋았지만 그래도 후배가 발표하는데 자빠져 자는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앉아서 잤다. 세미나가 끝나고 돈데이에서 삼겹살을 구우며 프로리그를 감상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어제 군대간 이용이가 참 고생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동방에서 밀린 과제를 좀 해야겠구나 하고 동방으로 갔는데 귀신같이 등장한 이재상이 열람실 가자고 해서 열람실에 왔다. 선형대수와 정보보호 과제는 수요일까지이고 목요일은 선형대수 퀴즈 보는날, 토요일은 연합세미나 발표해야되는날이고 일요일은 SSAT보는 날이라 할일이 많아 긴장을 해서 그런지 웹서핑이 평소보다 더욱 쫄깃쫄깃하게 잘되었다.
벌써 세시가 다 됐는데 과제는 안드로메다에 가있는데 아침에도 수업들어가야되는데데데데 역시 포스팅은 이럴 때 해야 제맛이다.


